<나의 그곳, 각각의 헌정> 7인전

작년 겨울 일백헌에서 <나의 시인, 각각의 헌정> 전을 한 뒤, 올해 또다른 헌정전을 준비하면서 잠정적으로 우리끼리 "헌정 모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일종의 동인이 되었다. 이번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 나는 두 개의 문제에 마주쳤다. 1. 이번 전시의 기획 단계에서 한주연 작가님이 제안한 "헤테로토피아" 개념 자체의 어려움: 헤테로토피아는 크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다른 공간"이라고 정의된다. 푸코는 감옥, 기숙사, 병영, 묘지, 미술관, 유곽 같은 사회적 기관을 예로 들어 설명하다가 개념을 미완의 상태로 놔두고 더는 연구를 하지 않았다. 이 미완의 개념에 대한 무수한 연구들이 있었으나 시원하게 끝을 본 결과가 없었다. 나도 한때 논문에 내 나름대로 이 개념을 응용/적용해보려고 애쓴 적이 있었으니, 헤테로토피아를 테너먼트나 부엌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어느 공간이 헤테로토피아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고, 헤테로토피아적인 공간이 존재하는 의의나 의미까지 나아가야 그 연구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 내게는 기억의 장소가 별로 없다: 어려서부터 나의 시간은 계속 미래로 미래로 던져졌다. 항상 바빴고 과거를 추억할 틈이 별로 없었다. 오래전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던 다락방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게 아마 내가 가장 애정하는 공간에 대한 그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또한 20-30대에 긴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고 지금도 방학마다 대륙을 오가며 지내다보니 나라는 사람은 여기저기 흩뿌려진 존재처럼 느껴져서 어느 한 곳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웠다. 뉴욕이나 서울처럼 내가 연구하는 도시에 대한 그림을 그릴까도 생각했지만 아주 개념적인 차원에서 머물까 두려웠다. 그래서 1과 2 사이에서 생각해낸 것이 "비장소"다. 비장소는 일상에서도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헤테로토피아다. 그리고 비장소는 계속해서 우리의 일상 공간을 침범해가며 확장 중이다. 일일 일드로잉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리게 된 키오스크 앞에서 공룡이 된 내 모습이나 온가족이 폰만 보고 있는 거실의 풍경같은 것이 그것이다. 미술이 좋은 것은, 내가 이 비장소의 헤테로토피아적 의의를 연구논문에서처럼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누구나 경험해봤을 비장소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내 역할은 충분하다. 제 유튜브 채널에 가시면 전시 관련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하는 비장소 개념을 설명하는 동영상의 내래이션이자 제 작업노트입니다. <나의 그곳, 각각의 헌정> --비장소, 고독하고 자유로운. 기차 기차역 호텔 지하철 정류장 고속도로 공항 비행기 대형마트 백화점 사무실 파티션 이곳을 마크 오제(Marc Augé)는 비장소(non-places)라 부른다. 이동과 소비의 장소인 이곳에서 나는 일시적인 이용자나 소비자일 뿐이다. 이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가 잘 일어나지 않으므로 나는 기호를 읽고 따르며,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특정한 역사나 기억이 축적되기보다 일시적인 이용과 경험이 중심이 된다. 이곳에서 난 고독하지만 자유롭다. 이번에 <나의 그곳, 각각의 헌정>전에서 나는 30편의 드로잉 작품을 그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공간에 헌정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기차역이나 공항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출발 전 여유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한 잔의 술, 딱 그만큼의 호젓한 자유를 표현하고 싶었다. 비행기 기내식을 기다리고 영화를 보는 동안 낯선 공간과 시간으로 이동하는 불안과 설렘이나, 환승지에서 피곤하면 벤치에 누워 잠시 단잠을 자도 무관한 자유, 내가 치우지 않아도 깨끗하게 잘 정돈된 호텔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대형마트, 파티션으로 가득 찬 사무실처럼 일상에서 경험하는 비공간으로 소재가 확대되면서 비장소는 내게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주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누가 폴댄스를 춰도 모르는 사람, 사무실 파티션을 허들처럼 넘는 사람, 횡단보도를 건너는 당나귀, 까마귀, 너구리, 기린, 지하철 개찰구에서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바다거북과 코끼리, 어딘가 떠나기 위해 댓잎 도시락을 싸서 기차를 기다리는 판다는 우리들의 모습이자, 내가 본 비장소의 얼굴이다.